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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1ero 2025. 1. 27. 05:31

배경음악과 함께 감상해 주세요.


코르부스 → 메이슨 H. 베리타스 살해로그.

  에던 뉴트는 태어나고 자라길 타협적인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약자라 생각했겠지만 이는 지극히 단면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에던은 겁이 많은데다 계산적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우리는 매사 고지식하게만 구는 에던과 마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던은 늘 진취적인 제 어머니를 동경했다. 자랑스러운 나의 어머니.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살아온 그녀를 에던은 평생토록 선망했다. 자라날 어른의 모습을 고를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제 어머니의 이름을 꺼낼 사람이었다. 사람은 닮고 싶은 이를 그대로 흉내내는 특성이 있지 않던가. 그러니 그 날, 에던이 먼 발치에 있던 동생을 끌어안고 밀밭을 구른 것은 전부 그 동경의 탓일지도 몰랐다.

발은 완전히 짓물렸다. 형체조차 복원시킬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말이 의사의 입을 타고 흘렀다. 하필이면 에던의 마을은 병원과는 거리가 먼 외지였고, 아이들이 아프거나 병에 걸리면 의사가 직접 출장을 와야 하는 구닥다리 방식을 선호하던 곳이었다. 충분히 나을 수 있었던 에던의 다리는 그렇게 영영 나을 길 없는 불치병의 흔적으로 자리했다. 차가운 가죽 의자에 몸을 지탱하던 에던은, 자신이 생각보다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리를 잃는 대신 동생의 목숨을 살렸고, 그동안 내내 동생에게 몰려 있던 애정을 이제는 배분하여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던가? 고작 아홉 살에 지나지 않았던 에던의 머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굴러갔다. 에던이 낙관을 내려놓은 건 처음 의족을 다리에 걸고 걸음을 내딛은 첫 순간이었다.

차갑고 딱딱한 쇠는 에던의 무게를 아프게 지탱했다. 종종 제 다리 한쪽에 달린 쇠의 무게가 버겁다며 울먹이면, 에던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물 먹은 목소리로 에던을 깊이 위로했다. 마을 구석구석 뛰어다니기를 즐겼던 에던은 다음 날부터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늘상 건강하고 활발한 사람들이 가득했던 마을은 다리 한 짝 불편한 사람을 존중하지 못 하는 환경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사항이었다. 에던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종종 마을에서 찾아 보기 힘든 간식이나 빳빳한 종이돈을 가지고 방문했던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은 꽤 버티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유감스러운 상황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에던은 꽤 살만 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늘상 툴툴거리던 동생은 에던을 존경하게 됐다. 마을 아이들은 에던의 말을 더 잘 듣게 되었고, 종종 퉁명스럽던 마을 사람들은 에던에게 만큼은 다정한 어른이 되어 주었다. 에던은 드디어 제 긍정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에던의 생일 날 전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이 생겨났는가를 조명하기 전에, 먼저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일생을 분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에던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에는 충분히 벗어난, 아주 평범한 남자였다. 타협을 할 줄 알고, 현실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주제넘게 굴고 싶어하지도 않는 보편적인 소시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일어난 사고는 그의 사고를 변형시켰다. 종종 에던을 향하던 이유 모를 동정과 안쓰러움이 담긴 시선은 에던을 비틀리게 만들었다. 에던은 멋진 삶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 앞에서 에던은 그저 운 나쁜 사고로 다리를 잃게 된 불쌍한 절름발이로 변해버린다.

에던은 아주 깊은 속에서부터 무언가 강렬히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앞에 세워 두고 수군거릴 때마다, 뜻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종이에 난무할 때마다, 가끔씩 에던의 부모님이 새벽에 찾아 와 그의 문드러진 다리의 단면을 보고 흐느낄 때마다. 상황이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에던은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은 에던이 바라던 만큼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에요, 내 삶은 불안정하지 않아요. 외치면 외칠수록 에던은 이 넓은 동굴에 홀로 표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마을이 지금은 에던의 목을 가득 죄이고 있었다. 기어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에던이 가지게 된 마법은 그를 완벽하게 이방인으로 치부시켜버렸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때마다 에던의 시선은 저절로 그의 아버지로 향했다. 오랜 고문과 모욕으로 인해 마법사들에게 트라우마와 뼛속 깊이 어린 증오를 지고 있던 에던의 아버지는, 종종 에던을 자신도 모르게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제 아무리 날고 긴들 어린아이는 결국 어린아이였다. 늘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하던 에던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못마땅한 듯 구불거리는 목소리의 높낮이, 입술을 씨근거리는 움직임, 단계별로 찡그려지는 눈썹을 매번 관찰하고 나서야만 음식을 삼킬 수 있었다. 에던은 확실히 말라가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이곳을 안식처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은 자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버지도 그럴까? 살기 위해 마법에게서 도망쳤던 사람이 다시금 마법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자신을 핏구덩이로 몰아넣은 이유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에던은 자꾸만 올라오는 불길한 생각을 꾹꾹 아래로 눌러 담았다.

그리하여 에던은 완전히 변모하게 된다. 비겁하고 모순적인 인간성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약점은 최대한 지우고 결함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라던 대로 그가 아끼던 모두는 그의 결함을 전혀 알아채지 못 했다. 웃을 때는 늘 동그랗게 입을 말려 웃고, 사소한 일에도 크게 기뻐하며, 주어진 모든 것에 온 마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으로 완벽히 오해한 것이다. 에던은 이 사기 행각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러니 모두의 앞에서 그의 비틀거리는 왼쪽 다리를 가리킨 메이슨을, 에던이 어떻게 증오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기어이 에던이 가진 비겁함을 메이슨이 콕 집어 힐난한 것이다. 에던이 주먹을 휘두른 이유는 정말 별 것 없었다. 그 순간 차오른 화를 본인이 제어하지 못 한 것뿐이었다. 실로 어린애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가 어떻게 됐든 에던의 나이는 불과 열일곱이었다. 충동적인 폭력성이 없을 리 만무했다. 아이들에게 붙잡히면서도 에던은 몇 번이고 소리쳤다. 에던의 모순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메이슨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행위가 둘을 영원히 갈라 놓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에던은 매일 같이 불안에 갇혀 살았다. 실은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현실 도피였다. 상황은 점점 에던이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가 학생들을 지나쳐 걸을 때마다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 에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덜걱거리는 쇠 다리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생면부지의 학생이 에던을 위로하는 말을 복도에서 외치기도 했다.

자신에게로 돌려진 수많은 고개를 보며 에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에던은 기어이 살의를 품었다. 메이슨을 향한 순수한 경멸이 자아낸 결과물이었다. 어쩌면 이는 가장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생각이라고 사료된다. 일이 흘러가는 형국만 본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들은 에던의 이름을 기억하기보단 그 다리가 불편하다는 애, 부모님이 스큅이라는 애로 일단락시켰다. 그는 자신의 실존을 되찾으려면 메이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죽이려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다행히 에던의 머리는 또래보다 조금 더 비상한 수준이었기에, 그럴싸한 계획을 마련할 여건이 되었다. 아마 메이슨의 바람이 일면부지 타인을 진창으로 털어뜨리는 것이라면 절반 정도는 그의 바람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에던의 신분은 완벽히 전락했다. 모두의 호의를 받는 친근한 사내는 이윽고 다수의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범죄자 신분으로 변절되었다. 그를 아는 사람은 혀를 차기도 했고 안타깝다는 탄식을 뱉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렴 에던은 상관하지 않았다. 촘촘하게 짠 계획은 여태까지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의 자신감은 곧 완벽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에던의 평소 상태는 보편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돌아갈 길을 지워버렸으니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기억을 지운 건 그 때문이었다. 외로움에 못 이겨 돌아섰을 때 그들이 자신을 영문 모를 표정으로 바라봐 주길 원했던 것이다. 특히 에던의 동생, 제프리에게는 그 마법이 완벽히 머리에 꽂힌 건지 에던의 존재 자체를 기억해내지 못 했다. 종종 에던이 그의 집으로 방문했을 때 그의 어머니만이 의미심장하다는 눈으로 에던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에던은 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메이슨을 수소문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고 착각할 때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가 자부하던 완벽이 처참히 깨져가는 순간을 제 눈동자로 음미하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가끔 자만의 기준까지 도달한 분노는 한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데, 에던이 딱 그 꼴이었다. 에던은 메이슨으로 인 해 두 손가락을 잃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얼굴에 남기게 되었다. 물론, 호그와트의 교사를 흉내낼 정도로 나름 수준급이었던 에던이 메이슨을 결코 멀쩡하게 돌려보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에던은 슬슬 겁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더 자세히 파고들어 보자면, 겁을 집어 먹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평생을 몰입할 계획은 전부 짜 두었는데, 정작 무섭다는 이유로 나서지 못 하면 전부 도루묵이 될 예정이었으니까. 함부로 술에 취해 거리를 배회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몸은 끈질기게 튼튼했고, 약이나 술의 취기에 함부로 넘어갈 살덩이들이 아니었다. 가끔 에던의 친구인 얀은 그에게 따끔한 조언을 날리곤 했었다. 가시 돋친 말들이었지만 곱씹어 보면 전부 그의 동기가 되어 주는 귀한 말들이라, 에던은 제 친구와 술잔을 나누는 날들을 무척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참을 수 없이 망설여지면 에던은 몇 번이고 제 화상 흉터를 열심히 매만졌다. 오돌토돌하게 돋은, 보기 좋게 구겨진 흉터는 밤마다 그에게 속삭였다. 헝겊과 짚을 겨우 뭉친 엉성한 침구 위에서 잠을 청할 때마다 에던은 그 속삭임이 꼭 제 어머니의 자장가 같다는 망상을 떠올리곤 했다.


 

다시 돌아와, 에던은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폐를 다쳤으니 계속해서 숨을 쉬어야만 겨우 산소를 공급할 수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은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지팡이를 놓칠 기세였다. 다행히 에던에게는 밀려오는 격통을 이겨낼 정신력이 충분했다. 이미 힘을 잃은 다리를 대신하여 부실한 의족이 그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평생 쥐 죽은 듯이 살 수 있었던 능력에도 그가 죄인을 자처한 건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걸쭉한 피가 애꿎은 의안만을 적셨다.

끝이었다. 그 사실을 실감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감이 에던의 발치 아래 차오르는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온기가 계속해서 에던의 몸 속을 바삐 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사내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지쳐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자신도 그와 똑같은 꼴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제 눈 앞의 한 사내를 죽이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에던의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그제야 거칠게 튀어나왔다. 메이슨은 에던의 멱살을 억센 손길로 잡고 있었고, 에던은 제 손으로 메이슨의 목을 쥐고 있었다. 그가 애용하던 권총은 진흙 위로 곤두박질쳤다. 오늘을 위해 내가 몇 년을 밑바닥 아래서 살아왔는가. 이 징글맞은 싸움에 참여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널 죽이고 싶었어.
널 죽임으로서 내가 너와 다르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지!
고작 내 멱살 잡는 것이 다인 너와 다르게. 이것 봐, 난 네 명줄을 쥐고 있잖아.


꼭 유희를 즐기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가 잘도 흘러나온다. 핏자국이 낭자한 에던의 손이 메이슨의 목을 점점 꽉 조여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메이슨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겨눠진 방향을 보아 어떤 주문을 날릴지는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는 위치였다. 희미한 조롱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기분이었다. 켜켜이 쌓아 두었던 해묵은 증오가 핏줄마다 스며들어 에던을 이루고 있었다. 네 눈으로 톡톡히 보라, 나는 살아 있다. 귀하디 귀한 네 핏줄을 얼마든지 끊을 수 있는 상태에서 나는 실존한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너에게 다름을 각인시킬 목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에던은 치열이 다 드러날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장 신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격통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상황을 버티지 못 하는 메이슨이 기어이 지팡이를 꺼내들지 않았는가.


넌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처음으로 네게 실망했어···.


만신창이가 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처를 입고, 군데군데가 쉬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선명히 들을 수도 없는 낮은 목소리였다. 눈에 띄는 새빨간 머리카락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눈은 그 어떤 이보다 편안해 보였다. 제 고향에 다다른 나그네 마냥 한껏 웃고 있었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선 순간 입 한가득 담아낸 기대감처럼. 사내가 쥔 지팡이는 아직 견고했다. 흙먼지와 피를 뒤집어 쓴 외형이었지만 그 본질을 알 수 있을 만큼  올곧게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이 가르쳤던 주문을 기억한다. 상대를 기어코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만 주문은 발동된다.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는 죽음은커녕 죽음을 가장한 순간조차도 선물되지 않았다. 이전에 말했던가, 에던은 명백한 겁쟁이였다. 메이슨을 죽이고자 마음 먹었음에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에던은 그 주문을 입에 올리지 못 했다. 초록빛 불이 그의 지팡이 끝에서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끝이 보였다. 시야 너머는 여전히 흐릿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던 피가 그의 오른쪽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땀과 피에 젖은 머리카락이 흉측한 오른쪽 눈 위를 겨우 가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길버트 존슨이 여정을 떠나기 전 오랜 휴가를 내고 호그와트 밖을 나선 것이었다.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호그와트에서 수백년을 걸쳐온 그림들도, 역사의 한 켠을 자랑하고 있는 유서 깊은 유령들도, 그 사내 하나의 죽음은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 누군가는 둘러댈 테고 누군가는 부정할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무슨 천수를 누리자고 그들에게 정을 붙였는지. 에던은 슬슬 자기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날 것만 같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수십 갈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던은 기다리고 있었다. 몇 초 안 되는 지금, 메이슨이 직접 주문을 외울 때까지.


실망할 것도 없어. 나는 그냥 나야, 네 착각 속에 갇혀 사는 대상이 아니라!


악에 받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쿨럭이던 입가 밖으로 미처 삼키지 못 했던 핏물이 흘렀다. 그의 분노는 이렇게나 독선적이고 불친절하다. 어쩌면 그의 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뿐일지도 모른다. 말이 끝나자마자 에던과 메이슨이 동시에 지팡이를 더욱 단단히 그러쥐었다. 두 개의 주문이 각각 상대의 목과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커다란 폭발음과 초록빛이 뒤따랐다. 이윽고 먼저 손의 힘을 푼 것은 에던이었다. 그의 몸이 힘없이 곤두박질 친다.

축 늘어진 몸은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채 눈을 감지도 못 한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유언을 던지거나, 저물어가는 해 자체에 한탄을 담을 시간은 없었다. 초록빛이 얼굴에 닿은 순간 그는 마지막을 직감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몸이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적당히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바람이 여즉 살랑이고 있었다. 에던의 발치 앞에 놓여진 메이슨의 지팡이는 완벽히 두동강 나 있었다.


끝내 부러지지 않은 건 그의 지팡이 하나 뿐이었다.